나눔의 공간
교회를 섬기며,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리고 삶을 살아가며 있었던 일들을 글로 담아봅니다. 이 글들이 진실된 신앙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Church Report on Vancouver Zion Baptist Church
June 10, 2017
We had our first service as Vancouver Zion Baptist Church on August 7, 2016. Previously, we were under IBC. At IBC, I was privileged and blessed to serve the Lord for nine and a half years as I poured out my time and energy to build His kingdom through the opportunities given to me. Last year, however, various circumstances and changes that were taking place in the church led me to believe that it was time for me to launch an independent Korean church. Korean brothers and sisters who shared the same vision with me came along with the blessing of IBC.
It has been 10 months since then. Although we have had many challenges and difficulties, God has provided people and resources to pursue our vision as a church. When we started, we did not have any money. But a few anonymous Korean donors gave $3000, which allowed us to buy necessary equipments and pay the church rent as we launched. God also provided a youth pastor from the first Sunday, which was quite miraculous.
One focus we have as a church is on Mission. In December, 2016, our church team was able to visit Port Hardy, which has been one of our mission fields for the past several years. We ministered to First Nations people at a reserve there. Last March, God allowed us to have a short term mission trip to Behchoko near Yellowknife in the NWT. We were there to help out a missionary who was ministering at a local church. Our team served the children through VBS and I was given the privilege to lead leadership training sessions and preach for a Sunday service.
Another focus we have is Music Ministry. On December 23, 2016, we had our Christmas concert at a heritage building in downtown with invited guests. It was an evening of joyous celebration and exceptional music. In May, we began a busking ministry. Our music team went out to the Langara Canada-line station and played music as we shared the Gospel and promoted our church. On May 27th, we were able to continue our annual benefit concert for missions. The event was a great success. It was an occasion of wonderful music, partnership, and servanthood as the church came together for a common purpose. Every Sunday, our church choir sings and once a month our instrumental ensemble plays in the church services.
Last Sunday on June 4, we had our 10th year anniversary service (counting from the time we started at IBC). It was a time of thanksgiving, loving fellowship, and hope for the future. I do not know what the future holds. There may be trials and hardships, but there is a calm assurance and confidence in me because I know that it is God Himself who works and accomplishes His will in and through us. All the more, I cling to and depend on Him. That is the only way I know how to build His church. I would like to thank IBC and brothers Win and Siggy for welcoming us 10 years ago and releasing us last year. I also want to thank Bob Krahn and the association for helping us at a critical time as we made transitions.
Please remember Vancouver Zion Baptist Church and pray for us. We are still awaiting to be registered as a charity. God is testing our patience through CRA. Pray for us to be a church that experiences God’s presence through worship, shares the love of God with one another, and proclaims the Gospel of Jesus Christ to our neighbors and beyond.
Respectfully submitted, David Cho
캐나다에는 10개의 주와 3개의 영토 (territories)가 있다. 북쪽에 있는 3개의 영토는 기후가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그리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다. 캐나다는 면적으로 보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나라이지만, 인구는 3천7백만이 채 되지 않아 세계 38위에 머무른다 (2017년 통계). 캐나다에서 사람들이 주로 모여사는 곳은 미국 국경과 가까운 도시들이다. 밴쿠버, 캘거리, 위니펙,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얼 등의 대도시가 이에 속한다.
지난 3월에 Northwest Territories (NWT)에 있는베초코 (Behchoko)라는 작은 도시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베초코는 인구가 2천명이 채 안되지만, NWT에서는 다섯번째로 인구가 많다. 그 곳에서 헌신하시는 한 선교사님과 연결이 되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7명으로 구성된 단기선교팀은, 1주일동안 선교사님 댁에 머물며 교회 사역을 도왔다. 이 글은 그 곳에서 사역하시는 한 목사님의 이야기다. 그는 사모님과 함께9명의 아이를 입양 또는 포스터 케어 (foster car)로 양육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그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주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두살밖에 안된 한 아이는 태어나서 불과 열흘쯤 뒤에 개심술 (open heart surgery)를 받아야 했고, 또 다른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상태였다.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내밀어진 손을 천진난만하게 받아치는 이 아기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애틋한 기쁨을 나누었다. 엄마가 만취된 상태에서 태어났던 어린이도 있었다. 쉽게 삐져서, 말을 잘 안들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을 때 보여주는 이 아이의 미소는 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들 감정의 굴곡이 심한 것 같았지만, 그들의 밝은 미소와 웃음소리에 사랑의 손길이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목사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텍사스 주에서 이곳까지 올라와서 지난 20년동안 헌신해 왔다고 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이 베초코였고,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이런 불행한 아이들을 양육하고자 하는 비전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주위의 핍박을 무릎쓰고 집 뒤에 있는 헛간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수년 뒤에 교회 건물이 세워지는 감격도 맛보았다. 12년 쯤 전에 몸에 이상이 와서 목소리를 상실했다. 말 할 때 허스키한 목소리가 가늘게 스며 나왔고, 귀를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저런 어려움 가운데 사역을 계속해 오다가, 몇년전에 그만 두려는 차에 선교사님과 연결이 되어 사역의 끈이 이어졌다고 한다. 온 몸으로 헌신하는 선교사님으로 인해 교회는 새로운 활력을 얻어, 지금도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그 목사님께 휴가갈 기회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12년 전에 다녀온 휴가가 마지막 이었다고 대답했다. 은퇴할 나이가 다 된 듯 해보이는 그는 어떠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을까? 은퇴라는 말은 어쩌면 그에게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보살펴야 하는 9명의 손자같은 아이들을 두고 어찌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현대인들은 대체로 휴가나 은퇴를 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이를 어찌해서든지 지키고 누리려 한다. 사실상 우리는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7일 째 쉼을 취하신 이유도, 삶의 리듬가운데 쉼이 필요함을 말해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개인이 누려야 할 절대적인 권리처럼 생각한다면, 이 또한 왜곡된 가치를 추구하는 현 시대의 반영은 아닐까? 삶의 리듬을 지키라고 주어진 쉼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기에, 이기적이고 죄악된 향락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되면 않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4). 일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일하고 섬기는 기회를 먼저 구할 때, 주어지는 쉼도 더욱 의미있고 보람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 목사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짧은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들은 이야기이기에, 내가 접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외진 곳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신실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내가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헌신된 삶을 주님도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베초코 뿐만 아니라 오지에서, 이름없이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섬기는 종들을 하나님은 지켜보시고, 그들을 통하여서 세상을 향한 소망을 보실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섬김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원하는 기도의 구체적인 열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2017.4.14)
지난 토요일에 UBC Symphony Orchestra 음악회에 참석했다. 그 날은 마침 오케스트라가 연주홀로 사용하는 Chan Centre건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이기도 했다. 이 날을 축하하기 위해 UBC 음대 학장, UBC 학장, 그리고 이 연주홀을 건립한 사람이 차례로 나와서 연설을 하였다.
Santa Ono라는 UBC학장 (president)및 부총장(vice-chancellor) 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멕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에도,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John Hopkins대학, 하버드 대학등, 저명한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 철저하게 엘리트의 진로를 밟아온 사람이고, 의학계에 공헌하며 성공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우울증으로 고통받으며 자살 시도를 두번이나 했다고 한다. 14살 때 한번, 그리고 20대 후반에도 고비를 넘겼다. 겉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 볼 만한 지성인이었고, 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속에는 그런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다. 어찌보면 아프고 수치스러울수도 있는 지난 일을 숨기고 싶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노출시킴으로써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청년들을 돕고자 하였다.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어떤 고민과 아픔이 있는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우리에게 남겼다: “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친절하십시요.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나의 친절함이 그들에게 소망과 용기의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겪은 과거의 아픔을, 타인에게 용기를 주고 회복케 하는 매개체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고통스럽고 아픈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도 역사하시고, 오히려 이런 경험을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지성인이라 할찌라도, 아무리 부를 누리고, 지위와 명성을 누리는 자라 할찌라도, 소망이라는 말이 필요없을만큼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역으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아무리 삶의 고통과 문제가 크다 할찌라도, 소망을 포기할만큼 절망적인 상황도 없다.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안에서 우리는 이 소망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Chan Centre를 건립하는데 기여한 Tom Chan은 사업가이고 자선가이다. 그는 특히 Chan Centre건립을 위해 천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연설 중 자신의 기독교적 유산에 대해 언급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크리스챤으로서의 본을 보여주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지가 놓아준 길을 따라 걸었다고 고백하였다. 그의 기독교적 마인드가 이런 아름다운 연주홀을 지을 수 있게 한 계기가 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연설을 God bless you라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자신의 신앙을 만인 앞에서 드러내며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그의 신앙이 돋보였다. 나는 그날 그를 우연히 화장실에서 지나쳤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대화를 나누어 본적도 없지만, 그의 자태에서 겸손과 소박함이 베어나오는 것 같았다.
첼로의 몸체를 본떠서 지어졌다는 연주홀은 그 날 따라 더욱 아늑하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UBC Symphony Orchestra와 University Singers및 UBC Choral Union이 자리를 함께하며 소리를 모았다. 모짜르트의 “Requiem”과 UBC교수인 Stephen Chapman이 작곡한 “A Song of Joys”가 매진 된 연주홀에 울려 퍼졌다. 악기와 합창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소리가 관중의 귀와 가슴을 흔들었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접하며 우리가 단순히 땅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을 향한 동경, 영원을 향한 동경이 내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Chan Centre가 지어진 지 20년이 지난것처럼, 내 삶속의 20년이라는 세월도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제 남은 삶은 얼마나 되며, 어떻게 삶이 마무리 될 것인가? 남은 삶도 소망의 증거가 되자. 삶이 마무리 될 때, 서 있는 마지막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게 하자. 그래서 그 날을 향해 나아가며, 오늘 주어진 하루도 소박하고 겸손한 열심으로 진실되게 살아가자.
(2017.2.17)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up-reach, in-reach, 와 outreach 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예배 공동체 (up-reach)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예배하는 자로 지으셨습니다. 예배가운데 회복과 영적 감동이 일어납니다. 능력의 예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역동적인 예배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배는 축제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향한 기쁨과 감격이 예배를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시달린 성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희망을 주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권면하는 축제입니다. 예배를 통하여서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한숨과 걱정으로 사는 게 아니라,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배가 있으면 사역과 섬김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며 누리는 은혜와 기쁨이 있기에 섬김과 봉사를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이전에 먼저 함께 모여 예배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의 중심되심을 깨닫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의 백성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입니다.
In-reach로써 말씀에 대한 교육과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씀이 본질입니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대신, 항상 말씀에서 시작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안에서 교회의 목적과 비전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을 따르면 결국 실망할 수 밖에 없고, 세상 철학을 따라가면 결국 공허함밖에 남지 않고, 전통이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관습을 따르면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고, 다른 세상의 소리, 프로그램을 따르면, 정작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러저리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 잘못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는 확신과 소명도 말씀안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오순절에도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기도와 말씀없이 부흥과 새로움의 역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성도간의 교제는 우리가 서로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문제 많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부족함과 연약함가운데 살고, 죄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거하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흘러 넘쳐서, 그들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비젼을 가지고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거룩함과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이 세워지기를 소원하십니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의 열매이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의 모습 자체가 세상을 향한 증거가 되고 메세지가 됩니다. 가장 훌륭한 신앙의 증거는 삶의 증거이고, 교회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사랑과 은혜의 증거입니다. Outreach는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깊이가 깊어질수록, 예배의 감동이 커질수록, 성도간의 교제가 풍성해질수록 정비례해서 드러나는 세상을 향한 상한 마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아 침례받고, 주님께 헌신하는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빈자리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야 하고,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감격이 우리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일에 거리나 쇼핑몰에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본 교회도 하나님의 그런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한 영혼이라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게 될 때까지 교회는 나아가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소명과 비전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본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고,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는 교회”로 세워질 때 우리는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을것입니다.
(2017.2.10)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17).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읍니다(엡 2:8). 이제 신앙인은 구원받은 자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함에 우리는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신앙에 대한 지식과 삶의 내용면에서 종종 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식의 양은 많아지는 반면 삶의 내용은 그에 비례해서 변화되지 않는 모순을 보게 됩니다.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그런 모습중의 한가지가 바로 전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전도가 중요함을 앎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실지로 전도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은 희망사항은 되지만, 실천 사항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민사회에서는 또다른 어려움과 도전이 있습니다. 타 언어권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언어의 장벽이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과 복음에 호의적이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설사 언어의 장벽이 없는 같은 민족사이라 할찌라도, 상대적으로 격리된 삶을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접촉의 대상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제한적 상황가운데서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타협되거나 변질될 수 없습니다. 상황적인 한계나 우리의 게으름과 두려움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맡기셨는데, 이는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역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책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에 의해서 흐려지고 있다면 이처럼 큰 비극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가장 큰 실망과 슬픔은 교회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복음안에서 자라나고, 복음의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복음안에서 누리는 은혜의 풍성함이 삶 속에서 흘러 넘칠 때, 그 흘러넘침이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또한 복음 증거라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언제든지 우리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벧전 3: 15),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써여 합니다 (딤후 4:2). 성령께서 영혼을 구원하려 하실 때, 우리가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보다 더 존귀하고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나누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즉, 죄인으로서의 인식, 죄에 대한 댓가,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등 입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해 놓은 복음 증거에 도움이 되는 성경말씀입니다. *
로마서의 길 | 요한복음의 길 | 히브리서의 길 | 계시록의 길 | 요한일서의 길 | |
죄인의 사실 | 3:10 – 12, 23 | 3:18 | 10:26 | 21:8 | 1:8 |
죄의 심판 | 6:23 | 3:36 | 10: 27 – 31 | 21:8 | 5:16 |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 5:8 | 3:16 | 10: 10 – 12 | 5:12 | 4:9 |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 | 10:9 – 10, 13 | 1:12 | 11:1 | 3:20 | 4:15 |
* 출처: “Drawing the Net” by Buddy Murphrey
(2017.1.20)
믿음을 세가지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롬 10: 9 – 10). 이는 엄청난 paradigm shift를 말합니다. 나의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육의 소욕대로 사는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삶으로의 전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내 존재의 대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입니다. 바로 삶의 내용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믿을 때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삶의 내용의 문제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하였듯이 (롬 1:17), 믿음이 이제는 내 삶의 방향과 결정의 주체가 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을 말합니다. 내 주관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고, 이를 따를 수 있는 결단을 매순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와 믿음으로 사는 삶을 놓고 많은 갈등을 합니다. 찾아오는 삶의 문제와 도전, 그리고 선택의 순간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처세술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에 항상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찾아 왔을 때 말씀에 순종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 하는데, 믿음의 구체적인 모습이 동사(verb)로, 즉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선인들은 드리고, 준비하고, 나아가고, 고난받았습니다. 즉,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본질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낳았습니다. 믿음은 또한 보이는 것에 대한 신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자원, 능력, 논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의 말씀에 나의 전적인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자세가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믿음의 증거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마음의 확신과 그 확신을 수반하는 삶이 더하여졌을 때 비로소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마 17: 20)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움직이는 능력이 바로 믿음에서 온다 하였습니다. 이는 내 임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됨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믿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고, 주님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12).
이처럼, 신앙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