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성경공부 | Excerpts from Friday Bible Study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up-reach, in-reach, 와 outreach 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예배 공동체 (up-reach)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예배하는 자로 지으셨습니다. 예배가운데 회복과 영적 감동이 일어납니다. 능력의 예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역동적인 예배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배는 축제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향한 기쁨과 감격이 예배를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시달린 성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희망을 주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권면하는 축제입니다. 예배를 통하여서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한숨과 걱정으로 사는 게 아니라,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배가 있으면 사역과 섬김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며 누리는 은혜와 기쁨이 있기에 섬김과 봉사를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이전에 먼저 함께 모여 예배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의 중심되심을 깨닫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의 백성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입니다.

In-reach로써 말씀에 대한 교육과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씀이 본질입니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대신, 항상 말씀에서 시작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안에서 교회의 목적과 비전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을 따르면 결국 실망할 수 밖에 없고, 세상 철학을 따라가면 결국 공허함밖에 남지 않고, 전통이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관습을 따르면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고, 다른 세상의 소리, 프로그램을 따르면, 정작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러저리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 잘못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는 확신과 소명도 말씀안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오순절에도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기도와 말씀없이 부흥과 새로움의 역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성도간의 교제는 우리가 서로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문제 많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부족함과 연약함가운데 살고, 죄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거하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흘러 넘쳐서, 그들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비젼을 가지고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거룩함과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이 세워지기를 소원하십니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의 열매이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의 모습 자체가 세상을 향한 증거가 되고 메세지가 됩니다. 가장 훌륭한 신앙의 증거는 삶의 증거이고, 교회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사랑과 은혜의 증거입니다. Outreach는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깊이가 깊어질수록, 예배의 감동이 커질수록, 성도간의 교제가 풍성해질수록 정비례해서 드러나는 세상을 향한 상한 마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아 침례받고, 주님께 헌신하는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빈자리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야 하고,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감격이 우리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일에 거리나 쇼핑몰에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본 교회도 하나님의 그런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한 영혼이라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게 될 때까지 교회는 나아가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소명과 비전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본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고,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는 교회”로 세워질 때 우리는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을것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17).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읍니다(엡 2:8). 이제 신앙인은 구원받은 자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함에 우리는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신앙에 대한 지식과 삶의 내용면에서 종종 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식의 양은 많아지는 반면 삶의 내용은 그에 비례해서 변화되지 않는 모순을 보게 됩니다.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그런 모습중의 한가지가 바로 전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전도가 중요함을 앎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실지로 전도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은 희망사항은 되지만, 실천 사항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민사회에서는 또다른 어려움과 도전이 있습니다. 타 언어권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언어의 장벽이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과 복음에 호의적이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설사 언어의 장벽이 없는 같은 민족사이라 할찌라도, 상대적으로 격리된 삶을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접촉의 대상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제한적 상황가운데서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타협되거나 변질될 수 없습니다. 상황적인 한계나 우리의 게으름과 두려움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맡기셨는데, 이는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역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책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에 의해서 흐려지고 있다면 이처럼 큰 비극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가장 큰 실망과 슬픔은 교회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복음안에서 자라나고, 복음의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복음안에서 누리는 은혜의 풍성함이 삶 속에서 흘러 넘칠 때, 그 흘러넘침이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또한 복음 증거라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언제든지 우리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벧전 3: 15),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써여 합니다 (딤후 4:2). 성령께서 영혼을 구원하려 하실 때, 우리가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보다 더 존귀하고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나누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즉, 죄인으로서의 인식, 죄에 대한 댓가,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등 입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해 놓은 복음 증거에 도움이 되는 성경말씀입니다. *

 로마서의 길요한복음의 길히브리서의 길계시록의 길요한일서의 길
죄인의 사실3:10 – 12, 233:1810:2621:81:8
죄의 심판6:233:3610: 27 – 3121:85:16
그리스도께서 죽으심5:83:1610: 10 – 125:124:9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10: 9 – 10, 131: 1211: 13: 204: 15

* 출처: “Drawing the Net” by Buddy Murphrey

믿음을 세가지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롬 10: 9 – 10). 이는 엄청난 paradigm shift를 말합니다. 나의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육의 소욕대로 사는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삶으로의 전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내 존재의 대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입니다. 바로 삶의 내용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믿을 때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삶의 내용의 문제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하였듯이 (롬 1:17), 믿음이 이제는 내 삶의 방향과 결정의 주체가 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을 말합니다. 내 주관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고, 이를 따를 수 있는 결단을 매순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와 믿음으로 사는 삶을 놓고 많은 갈등을 합니다. 찾아오는 삶의 문제와 도전, 그리고 선택의 순간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처세술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에 항상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찾아 왔을 때 말씀에 순종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 하는데, 믿음의 구체적인 모습이 동사(verb)로, 즉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선인들은 드리고, 준비하고, 나아가고, 고난받았습니다. 즉,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본질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낳았습니다. 믿음은 또한 보이는 것에 대한 신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자원, 능력, 논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의 말씀에 나의 전적인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자세가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믿음의 증거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마음의 확신과 그 확신을 수반하는 삶이 더하여졌을 때 비로소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마 17: 20)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움직이는 능력이 바로 믿음에서 온다 하였습니다. 이는 내 임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됨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믿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고, 주님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12).

이처럼, 신앙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